인물 파일 번호 IJM-0037
분류: 역사 아카이브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조각가, 화가, 건축가

제1절 -- 인물 개요
| 이름 | 미켈란젤로 |
|---|---|
| 영문명 | Michelangelo |
| 국적 | 이탈리아 |
| 생몰년 | 1475–1564 |
| 성별 | 남성 |
| 세기 | 16-18세기 |
| 분야 | 예술 |
| 직함 | 조각가, 화가, 건축가 |
제2절 -- 경력
1475년 토스카나 산악 지방의 작은 마을 카프레세에서 가난한 하급 관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어머니의 병약함 탓에 피렌체 근교 세티냐노의 석공 집안에 수양되어 자랐다.훗날 그는 「돌을 다루는 망치와 끌을 어미의 젖과 함께 빨아들였다」고 회고했다.예술가가 되려는 꿈을 반대한 아버지의 매질을 견디며 열세 살에 기를란다요의 공방에 견습으로 들어간 것이 그의 첫 전환점이었다.
재능을 알아본 피렌체의 실력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그를 메디치 저택으로 불러 고대 조각 컬렉션을 열람하게 하고 신플라톤주의 지식인들과 어울리게 했다.스물셋에 로마에서 조각한 「피에타」와 스물아홉에 피렌체에서 완성한 5미터 높이의 「다비드」상은 유럽 전역에 그의 이름을 울렸다.두 번째 전환점은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으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맡게 된 일이었다.
스스로 조각가라 여겼던 그는 회화 작업을 내켜 하지 않았지만, 4년 넘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꺾은 채 300명이 넘는 인물을 홀로 그려내 「천지창조」라는 회화사의 금자탑을 세웠다.이후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 조각과 「최후의 심판」(1536-1541) 작업을 이어갔고, 일흔이 넘어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어 거대한 돔의 설계도를 남겼다.
시인으로도 300여 편의 소네트를 남기며 영혼의 고뇌를 노래한 그는 평생 독신으로 금욕적 삶을 고수했다.1564년 로마의 작업장에서 여든여덟의 나이로 눈을 감은 그의 유해는 제자들의 손에 의해 비밀리에 피렌체로 옮겨져 산타 크로체 성당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인체와 영혼을 새긴 영원한 기념비로 남아 있다.
제3절 -- 연표
제4절 -- 명언
“모든 돌 안에는 조각상이 있고, 조각가의 임무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목표가 너무 높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낮아 쉽게 이루는 것이다.”
제5절 -- 에피소드
[A]4년간 고개를 젖히고 그린 고행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고개를 젖힌 채 4년간 그림을 그렸다. 300개 이상의 인물을 혼자 완성했으며, 오랫동안 고개를 젖히고 작업한 탓에 경추가 심하게 변형되어 이후에는 편지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6절 -- 영향과 유산
미켈란젤로는 조각, 회화, 건축에 대한 탁월한 역량으로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창조적 두뇌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비드상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예술적 성취의 기준을 세웠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그의 건축적 비전은 로마의 스카이라인을 결정짓고 전 세계 교회 건축에 영향을 미쳤다.
제7절 -- 대표작·주요 업적
- [01]다비드상 (1501-1504)
- [02]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1508-1512)
- [03]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성당 (1536-1541)
- [04]피에타 (1498-1499)
- [05]성 베드로 대성당 돔 (1547년 설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