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파일 번호 IJM-0044
분류: 역사 아카이브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
화학자, 미생물학자
제1절 -- 인물 개요
| 이름 | 루이 파스퇴르 |
|---|---|
| 영문명 | Louis Pasteur |
| 국적 | 프랑스 |
| 생몰년 | 1822–1895 |
| 성별 | 남성 |
| 세기 | 19세기 |
| 분야 | 의학 |
| 직함 | 화학자, 미생물학자 |
제2절 -- 경력
1822년 12월 27일, 루이 파스퇴르는 프랑스 동부 쥐라 산자락의 작은 마을 돌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하사관 출신 무두장이 조제프 파스퇴르의 아들로 태어났다.무두질 공장과 포도밭 사이에서 자란 그는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연필을 든 채 이웃들의 얼굴을 그리는 데 능해 한때 화가가 되리라 여겨졌다.열다섯 살 무렵 교장의 권고로 브장송 왕립중학교에서 라틴어와 자연과학을 보강하면서 엄밀함과 질서에 대한 애착이 평생의 태도가 되었다.
1843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해 1847년 주석산염의 광학 이성질체를 현미경과 핀셋으로 직접 분리함으로써 분자 비대칭성을 최초로 증명한 순간이 그의 첫 전환점이었다.이후 스트라스부르 대학 화학 교수로 부임해 학장의 딸 마리 로랑과 결혼했다.1854년 릴 대학 이학부 학장으로 옮긴 그는 지역 포도주·맥주 양조업자들의 「쉬어 버리는 술」 문제를 의뢰받아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발효가 순수한 화학 반응이 아니라 특정 미생물의 활동임을 증명하며 자연발생설을 뒤집는 「세균설」을 제창했고, 1862년 액체를 약 60도에서 가열해 급속히 식히는 이른바 「파스퇴르 살균법」을 고안했다.이것이 두 번째 전환점으로, 그는 곧이어 1865년부터 3년간 남프랑스 양잠업을 파멸 직전으로 몰아넣은 미립자병을 규명하고 건강한 누에알을 선별하는 방법을 보급해 산업 전체를 구했다.
1879년 닭콜레라균을 약독화한 배양액으로 닭을 면역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제너에 대한 경의를 담아 「백신(vaccine)」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1881년에는 푸일리르포르 농장에서 탄저병 백신의 공개 실험을 감행해, 2주 뒤 비접종군 양은 전멸하고 접종군은 전원 생존한다는 극적 결과로 유럽을 놀라게 했다.1885년 7월 6일에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린 아홉 살 소년 조제프 마이스테르에게 의사 자격이 없는 그가 13회에 걸쳐 약독화 광견병 백신을 접종해 기적적으로 살려 냈고, 이후 세계 각지의 환자들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1888년 대중의 모금으로 파스퇴르 연구소가 문을 열자 그는 초대 소장으로 취임했다.1868년 한 차례 겪은 뇌졸중으로 좌반신이 마비된 뒤에도 오른손만으로 20여 년을 연구한 끝에, 1895년 9월 28일 파리 근교 빌뇌브 레탕 별장에서 향년 72세로 타계했다.그가 개척한 백신학과 무균 기술은 지금도 해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을 구하고 있다.
제3절 -- 연표
제4절 -- 명언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
“과학에 국경은 없다. 지식은 인류 전체의 것이기 때문이다.”
제5절 -- 에피소드
[A]소년 조제프 마이스테르를 살리다
1885년 7월, 아홉 살의 알자스 소년 조제프 마이스테르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14군데나 물려 파스퇴르 앞에 실려 왔다. 의사가 아니었던 그는 윤리적 고뇌에도 불구하고 13회에 걸쳐 약독화 광견병 백신을 투여했고, 소년은 기적적으로 회복해 훗날 파스퇴르 연구소의 문지기가 되어 평생 스승의 묘소를 지켰다.
제6절 -- 영향과 유산
파스퇴르는 세균설을 확립해 의학을 신비주의에서 과학의 시대로 끌어올렸고, 파스퇴르 살균법은 오늘날까지 세계 식품 산업의 기반이다. 그가 정립한 백신의 원리는 천연두, 소아마비, 홍역,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에 이르는 면역 체계로 이어졌다. 그의 이름을 딴 파스퇴르 연구소는 열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감염병 연구의 중심이다.
제7절 -- 대표작·주요 업적
- [01]분자 카이랄성 연구 (1848)
- [02]세균설과 파스퇴르 살균법 (1862)
- [03]탄저병 백신 (1881)
- [04]광견병 백신 (1885)
- [05]파스퇴르 연구소 설립 (18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