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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파일 번호 IJM-0003

분류: 역사 아카이브

마리 퀴리

Marie Curie

물리학자 겸 화학자

마리 퀴리

제1절 -- 인물 개요

이름마리 퀴리
영문명Marie Curie
국적폴란드
생몰년1867–1934
성별여성
세기19세기
분야과학
직함물리학자 겸 화학자

제2절 -- 경력

1867년 러시아 제국 치하의 바르샤바에서 교사 부부의 막내로 태어난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언니를 잃는 아픔을 겪으며 자랐다.당시 폴란드에서는 여성의 대학 진학이 금지되어 있어, 그녀는 비밀 지하 대학에서 공부하며 언니의 파리 유학을 돕기 위해 가정교사로 일했다.스물넷의 나이에 파리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 입학한 것이 그녀의 첫 전환점이었다.

낮에는 굶주림을 참으며 공부하고 밤에는 다락방에서 책을 읽은 끝에 그녀는 수석으로 학위를 받았고, 피에르 퀴리를 만나 결혼하며 평생의 동료이자 연구 파트너를 얻었다.부부는 허름한 창고 실험실에서 수 톤의 피치블렌드를 정제해 1898년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고,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두 번째 전환점은 1906년 피에르의 갑작스러운 사고사였다.깊은 슬픔을 딛고 그녀는 소르본 대학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으며, 1911년에는 라듐 분리 연구로 노벨 화학상까지 수상해 역사상 두 개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동식 X선 차량 「프티트 퀴리」를 직접 운전하며 수많은 부상병을 구했고, 전후에는 라듐연구소를 이끌며 후학을 길러냈다.

그러나 오랜 방사선 피폭이 원인이 된 재생불량성 빈혈로 1934년 생을 마감했다.

제3절 -- 연표

1867바르샤바에서 출생
1891파리 대학 입학
1895피에르 퀴리와 결혼
1898폴로늄과 라듐 발견
1903노벨 물리학상 수상
1911노벨 화학상 수상 (두 번째)
1934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 (향년 66세)

제4절 -- 명언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없다. 이해해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제5절 -- 에피소드

[A]아직도 방사능을 내뿜는 노트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퀴리의 연구 노트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강한 방사선을 방출한다. 열람하려면 납으로 된 상자와 보호복이 필요하다.

제6절 -- 영향과 유산

퀴리의 방사능 발견은 물리학과 화학에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열었고, 방사성 동위원소 분리 기술은 암 치료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그녀는 과학계의 성별 장벽을 허물고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두 개의 다른 과학 분야에서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제7절 -- 대표작·주요 업적

  • [01]폴로늄 발견 (1898)
  • [02]라듐 발견 (1898)
  • [03]노벨 물리학상 (1903)
  • [04]노벨 화학상 (1911)
  • [05]제1차 세계대전 이동식 X선 장비 개발

제8절 -- 참고 자료

파일 끝 -- IJM-00031/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