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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파일 번호 IJM-0006

분류: 역사 아카이브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 VII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

제1절 -- 인물 개요

이름클레오파트라 7세
영문명Cleopatra VII
국적이집트
생몰년69 BC – 30 BC
성별여성
세기기원전
분야정치
직함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의 여왕

제2절 -- 경력

기원전 69년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왕궁에서 태어난 클레오파트라 7세는, 300년 가까이 이집트를 다스려온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예였다.그녀는 역대 왕족 중 처음으로 이집트어를 익혔을 뿐 아니라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아람어 등 아홉 개 언어를 구사했으며, 수학과 철학,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열여덟 살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통치자로 즉위한 것이 첫 전환점이었다.그러나 곧 권력 투쟁에서 밀려 궁에서 쫓겨난 그녀는, 기원전 48년 내전을 피해 알렉산드리아에 온 율리우스 카이사르 앞에 양탄자에 몸을 숨겨 등장하는 대담한 연출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카이사르의 도움으로 왕위를 되찾고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은 그녀는,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로마의 또 다른 실력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손을 잡아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했다.

안토니우스와 사랑에 빠져 세 자녀를 낳았고, 동방 영토를 재분배하며 이집트의 영광을 되살리려 했다.그러나 옥타비아누스와의 권력 다툼은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결정적 패배로 끝이 났다.이듬해 로마군이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하자 그녀는 「나는 여왕으로 살고, 여왕으로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코브라의 독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서른아홉의 나이였다.그녀의 죽음과 함께 헬레니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제3절 -- 연표

69 BC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51 BC18세에 이집트의 여왕이 됨
48 BC카이사르를 만나 동맹을 맺음
44 BC카이사르 암살 후 로마를 떠남
41 BC안토니우스와 동맹을 맺고 결혼
31 BC악티움 해전에서 패배
30 BC알렉산드리아에서 사망 (향년 39세)

제4절 -- 명언

나는 여왕으로 살고, 여왕으로 죽을 것이다.

제5절 -- 에피소드

[A]사실 전설적인 미인은 아니었다?

동전 초상화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전설 속의 절세미인은 아니었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그녀의 매력이 외모만이 아니라 대화와 지성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녀는 9개 국어를 구사하며 외교와 학문에 뛰어났다.

제6절 -- 영향과 유산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실질적 통치자였으며, 그녀의 죽음은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의 종말과 로마 제국으로의 흡수를 의미했다. 뛰어난 정치적 역량과 문화적 후원으로 로마의 팽창에 맞서 20년간 이집트의 독립을 지켜냈고, 2천 년 이상 수많은 예술, 문학, 영화 작품에 영감을 주고 있다.

제7절 -- 대표작·주요 업적

  • [01]율리우스 카이사르와의 동맹 (기원전 48년)
  • [02]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동맹 (기원전 41년)
  • [03]알렉산드리아 카이사레움 신전 건설
  • [04]이집트 해군 함대 확장
  • [05]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영토 회복

제8절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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