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파일 번호 IJM-0007
분류: 역사 아카이브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물리학자 겸 천문학자

제1절 -- 인물 개요
| 이름 | 갈릴레오 갈릴레이 |
|---|---|
| 영문명 | Galileo Galilei |
| 국적 | 이탈리아 |
| 생몰년 | 1564–1642 |
| 성별 | 남성 |
| 세기 | 16-18세기 |
| 분야 | 과학 |
| 직함 | 물리학자 겸 천문학자 |
제2절 -- 경력
1564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몰락한 귀족 출신의 음악가 아버지 밑에 태어난 갈릴레오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피사 대학에 진학했다.그러나 우연히 들은 기하학 강의에 매료되어 수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 그의 첫 전환점이었다.피사 대학 성당의 흔들리는 램프를 보며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했다는 일화는 그의 관찰자적 기질을 잘 보여준다.
스물다섯에 피사 대학 수학 교수로 임용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이론을 실험으로 반박했고, 이후 파도바 대학으로 옮겨 역학 연구를 심화했다.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개량해 배율을 크게 높인 뒤 하늘로 돌린 것이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목성의 네 위성, 금성의 위상 변화, 달의 분화구, 태양 흑점을 차례로 관측한 그는 「별의 전령관」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이는 교회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고, 1616년 지동설 설교를 금지당했다.그럼에도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출판해 사실상 지동설을 옹호했고, 이 때문에 이듬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말년에는 실명의 고통 속에서도 구술로 「새로운 두 과학」을 완성해 근대 역학의 초석을 놓았고, 1642년 피렌체 근교 아르체트리에서 눈을 감았다.
제3절 -- 연표
제4절 -- 명언
“그래도 지구는 돈다.”
제5절 -- 에피소드
[A]재판의 진실
갈릴레오가 재판 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유명한 일화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택 연금 중에도 연구를 계속하여 근대 역학의 기초인 새로운 두 과학을 완성했다. 그의 진정한 저항은 말이 아닌 행동에 있었다.
제6절 -- 영향과 유산
갈릴레오는 교리 대신 관찰과 실험을 고수하여 근대 과학적 방법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의 망원경 관측은 지동설의 최초 실증적 증거를 제공했고, 역학 연구는 뉴턴의 운동 법칙의 토대를 놓았다. 그가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제7절 -- 대표작·주요 업적
- [01]별의 전령관 (1610)
- [02]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1632)
- [03]새로운 두 과학 (1638)
- [04]목성의 4대 위성 발견 (1610)
- [05]굴절 망원경 개량 (1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