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파일 번호 IJM-0004
분류: 역사 아카이브
나쓰메 소세키
Natsume Soseki
소설가 겸 영문학자

제1절 -- 인물 개요
| 이름 | 나쓰메 소세키 |
|---|---|
| 영문명 | Natsume Soseki |
| 국적 | 일본 |
| 생몰년 | 1867–1916 |
| 성별 | 남성 |
| 세기 | 19세기 |
| 분야 | 문학 |
| 직함 | 소설가 겸 영문학자 |
제2절 -- 경력
1867년 에도 우시고메에서 태어난 나쓰메 긴노스케는 집안이 기울어가던 막부 말기에 태어난 탓에 한때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어린 시절 접한 한학에서 문학의 세계에 눈을 떴고,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해 당대 최고의 영문학도로 손꼽히게 된 것이 그의 첫 전환점이었다.대학 졸업 후 마쓰야마와 구마모토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며 실력을 쌓던 그는, 1900년 문부성 관비 유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낯선 서구 문명 속에서 「영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회의에 빠져 극심한 신경쇠약을 앓았고, 귀국 후에도 고통이 계속되었다.바로 이 고뇌를 글쓰기로 풀어낸 것이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1905년 잡지 호토토기스에 연재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뜻밖의 호평을 받았고, 이어 「도련님」, 「풀베개」 등을 발표하며 일약 대작가로 떠올랐다.
1907년 그는 도쿄제국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해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으며, 「산시로」, 「그 후」, 「문」으로 이어지는 전기 삼부작과 「행인」, 「마음」에 이르는 후기 삼부작을 통해 근대 일본인의 고독과 에고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위궤양에 시달리던 그는 장편 「명암」을 연재하던 중 1916년 마흔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펜으로 일군 국민 작가의 위상은 오늘날까지 흔들림이 없다.
제3절 -- 연표
제4절 -- 명언
“이성으로 일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맡기면 떠내려간다.”
제5절 -- 에피소드
[A]천 엔 지폐의 얼굴
소세키의 초상은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 천 엔 지폐에 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세키 본인은 자신의 사진이 공개적으로 유포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제6절 -- 영향과 유산
소세키는 근대 일본 소설을 본격적인 문학 형식으로 확립하고 서양의 서사 기법과 일본적 감수성을 융합했다. 개인주의, 고독, 전통과 근대의 갈등에 대한 그의 탐구는 20세기 일본 문학의 주제를 정의했으며, 오늘날에도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제7절 -- 대표작·주요 업적
- [01]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05-1906)
- [02]도련님 (1906)
- [03]마음 (1914)
- [04]문 (1910)
- [05]그 후 (1909)



